만 나이 개정법을 시행하기 전 나이로 29살이 되었다.
나이가 30살이 되기 직전이고, 개발자로 취업하기 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보니 점점 예전의 기억들이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개발자가 되기 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10년간의 회고를 내 인생의 중요했던 순간들을 위주로 기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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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할 겸 맹그로브 고성으로 공부하러 왔는데 감수성이 풍부해져 더 잘 써질 것만 같다.
고등학생 시절
집안 사정 때문에 인문계에서 특성화고로 전학 간 이후 가고 싶어했던 대학의 꿈을 접고 취업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대학을 가기에 현실이 녹록지 않았고,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가족을 위해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기능 경기 대회
특성화고등학교에서는 보통 기능경기대회라 해서 특정 과목에 관한 기술을 공부하여 대회에 나가곤 했는데, 입상하면 대기업에 합격할 때 이점이 크다 들었다. 그래서 대기업 취업을 위해 기능 경기 대회에 나가기로 마음먹고 관련된 공부를 시작했었다. 전학을 가게 되어 남들보다 늦은 2학년 때부터 시작하긴 했지만, 리눅스를 다루거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기술들이 재밌어서 꽤 즐겁게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물론 2학년 내내 수업이 끝나고 저녁 9시까지 공부하다 가는 게 힘들긴 했지만 나름 재밌는 추억이었다.
그 시절 거의 매일 먹었던 중식 집 볶음밥은 진짜루 맛있었다,,
중식집 이름이 진자루였나?
그치만 드라마처럼 짧은 시간 내에 수상하는 것은 역시나 어려웠다. 짧은 시간도 문제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적극적이지 못했었고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취업 준비
기능경기대회에서 수상하지 못했더라도 열심히 하면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교내에서 회장, 멘토링 수업, 교환 학생과 같은 대외 활동, 학과 1등 하기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3학년 2학기가 되었고 국내 대기업 중 가장 유명한 그룹의 한 계열사에 먼저 지원했다.
사실 지금 같았으면, 다른 곳을 먼저 지원해보고 들어가기 힘든 곳을 제일 늦게 지원했을 것 같은데 무슨 깡이었는지 모르겠다.
지원서 작성 ➡️ 인적성검사 ➡️ 면접 ➡️ 신체검사 ➡️ 합격
인적성 검사 시험은 두 달 정도 준비해서 쉬울 거라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부족했고 기대보다는 못 풀었다고 생각했었다. 걱정만했던 거와 달리 인적성 검사에 합격하여 마지막 관문인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면접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면접 장소 메일을 잘못 읽고 본사에 찾아가서 면접장이 어디냐고 물어봤었는데,, 다행히 한 시간 전 도착을 기준으로 출발해서 시간 내로 원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면접 시간도 다른 분들보다 짧아서 떨어졌다는 시그널인가 싶었다.
대기업 합격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 합격 발표가 났고 보자마자 아버지한테 전화해 합격했다고 신 나게 얘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회사에 합격해서 행복한 것보다 집안에 보탬이 되어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컸던 것 같다. 웃음이 많이 사라지셨던 부모님의 웃음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고졸 황그래 사원
내가 딱 회사에 입사했을 때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했었다. 해당 드라마는 고졸인 장그래 역할을 맡은 인물이 대기업에 인턴으로 근무하며 인턴 기간동 안 다른 좋은 스펙의 인턴들과 경쟁을 하며 성장해나가는 것을 그린 드라마다. 부서 분들이 미생을 감명 깊게 보셨는지 나에게 황그래라는 별명을 부여해주셨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해서 고군분투하는 나와 비슷한 느낌이어서 어울리고 나름 좋았던 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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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별명으로 유명해져 사내 잡지에 올라가기도 했었다.
회사 생활 시작
회사는 정말 현실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내가 있던 부서는 정보보안과 관련된 부서로 고객사의 UTM 장비를 관리하고, 보안 관제를 하는 것이었는데 고등학교 수준에서 내가 배웠던 기술들과는 많이 달랐었다.
아! 원래 배치받을 부서가 있었는데 조금 더 IT쪽, 기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어 부서 배치 면접에서 강하게 나를 PR해서 부서를 옮겨달라고 했다. 그 부서가 정보보안 관련된 부서였다
내가 이 부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이 든 순간, 우선 부서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고민해보았다.
1. 무조건 남들보다 늦게 퇴근한다.
되게 무식한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 수 있지만, 효과가 좋았다. 퇴근은 18시였지만 대리님, 과장님, 차장님은 21시를 넘어서 퇴근하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남아서 저녁 식사도 같이하면서 회사 얘기도 듣고, 부서 내 문서들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었다. 또 남는 시간에는 꾸준하게 네트워크와 리눅스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었다.
2. 선배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꾸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고 물어본다.
아무래도 선배들이 하시는 업무가 곧 내 업무이기도 했던 우리 부서 특성상, 남들을 따라 하면 반이라도 갈 수 있었다. 선배들이 하신 업무 자료를 계속 꾸준하게 보려고 노력했고, 모르는 것은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물어봤었다. 사실 그때는 '이런 것까지 물어봐?' 라고 할 정도로 너무 많이, 너무 다양하게 물어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꾸준함과 노력으로 업무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앞으로 회사에 들어가면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3. 예스맨이 되자
내가 있던 부서는 관제 업무가 있어 24시간으로 근무가 돌아가다 보니 아침 회의 때, 인수인계 시간이 필수적이었는데 하던 업무를 넘겨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까다로운 것부터 귀찮고 어려운 업무까지 다양하게 있는데, 이러한 업무들을 최대한 내가 다 가져가려고 했다.
[아침 회의 시간]
선배: 이거 처리해주실 분 계실까요?
나: 저요! 제가 하겠습니다!
모든 업무에 대해 예스를 한 셈이다. 업무 처리가 힘들었던 경우도 많았는데 이때의 경험들이 많이 쌓여 정말 많이 성장했었던 것 같다. 회의 뿐만 아니라 부서 분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내가 책임지고 하려고 했던 경우가 많았다. 아! 그리고 황그래로 불릴 때 "그래"의 의미는 예스맨이기도 했었다. 내가 너무 다 좋다, 다 하겠다라고 했었나 싶다.
위 내용 말고도 꽤나 많았는데 내용이 길어질 것 같아 중요한 것만 적었다. 이렇게 꾸준하게 노력하니 부서 분들이 나를 인정해주기 시작하셨고 고과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상을 받을 수 있었다. 달마다 사업부별로 열심히 노력하는 직원에게 주는 상이었는데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알아주는 것에 대해 너무 감사했고,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했다.
상 받는 것이 어색해서 그런지, 사진에서도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군 휴직, 그리고 복직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 군 복무를 하고 다시 바로 회사로 돌아가게 되었다. 복직 후에는 부서 내 새로 오신 분들이 많으셨었고 다들 똑똑하시고 잘하셔서 배울 점이 많았었다. 복직하고도 휴직 이전과의 업무가 비슷하여 금방 적응해서 일을 하고 있었고 비슷한 일이 연속되었다.
고등학생 때는 목표가 대기업 취직이었는데 막상 입사 후 정신없이 보내다가 이 시점에서 목표 없이 비슷한 일을 계속하고 있다 보니 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일은 적응되고 많은 것을 할 줄 알았지만, 기초가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었다. 이러한 복합적인 생각이 들면서 생각해보니 '내 원래 목표는 대기업이 아니라 대학이었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깊은 고심에 빠졌다.
개발자가 되고 싶다
대학을 가는 이유가 비단, 일이 지루해서는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6학년 때 게임을 되게 좋아했는데 프리 메이플이라해서 메이플 사설 서버를 따로 열어 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 클라이어트 서버를 어디서 구해서 영상을 따라하며 MySQL을 설치하고 만지작만지작하다가 결국 서버를 개인 네트워크에서 구축해보고, 그 서버를 친구와 단둘이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고등학생 때는 웹 사이트를 만들어보고 싶어 영상을 따라하며, 가비아 호스팅을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워서 실패해본 경험이 있었고, 회사에 다니면서는 회사 선배와 게임을 만들어보고싶어 유니티를 공부해 본 적도 있었으며 회사 내 효율적이게 돌아가지 못하는 프로세스를 자동화해보려고 노력해본 경험도 있다. 이렇게 나는 일상생활에서 개발과 관련된 경험을 많이 해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개발자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퇴사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져서 퇴사하고 싶었지만 내가 퇴사하면 가족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쉽게 퇴사를 결정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부모님께서 가도 좋다고 가서 열심히 해보라고 말씀해주신 덕에 조금의 부담은 내려놓고 퇴사를 결정지을 수 있었다. 회사에 퇴사한다고 얘기했을 때 많은 분들이 아쉬워해주셨는데 좋아해주시고 아껴주셨던 부서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학교 가서도 잘할거라고 믿음을 준 어머님, 아버님에게도 너무 감사하다.
퇴사 후 동기가 가지 말라고 나에게 보내준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보내주었던 동기는 아직도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벌써 9년 차인 멋진 직장인이다.
새로운 시작, 대학으로
적지 않은 나이 24살, 대학에 입학했다.
나보다 4살 어린 친구들과 같이 시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교내에서 하는 건 무엇이든 다 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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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1학년 2학기 시간표인데, 24학점을 들으면서 동아리 활동, 스터디, 튜터링, 근로 장학생까지 했었다.
다양한 경험
컴퓨터공학부 근로 장학생
우선 대학 입학 시 가장 걱정되었던 것이 금전적인 부분이었다. 회사에 다니다 퇴직하면서 가족의 부담은 늘어났었고 온전히 공부만 할 수 없는 상태였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찾던 중 컴퓨터공학부 근로 장학생을 뽑는 것을 보았는데 학과 교수님들과 친해질 기회와 학부 내 전달사항을 빠르게 받아볼 수 있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해서 합격했었다.
컴퓨터공학부 근로 장학생으로 근무하며 주로 아래와 같은 일들을 했다.
- 학과 수업 PC 개발 환경 구축
- PC 점검 및 수리
- 실습실 문 열고 닫기, 청소
위는 요약해서 적어 보이지만, 방학 때도 주 5일 8시간씩 출근하여 모든 강의실에 있는 PC를 포멧하고 개발 환경을 세팅하는 등 실습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근로 장학생으로 근무하며 출석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었다. 근로장학생은 매월 말일 근무일지를 작성해야 하는데 근로 장학생이 워낙 많기도 하고 시간을 짧게 하다 보니 매주 시간표가 같지 않은 경우가 많아 까먹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자기가 언제 출근했는지 항상 기록해두었어야 했는데 이게 너무 불편하기도 했었고 여러 명이 근무하다보니 인수인계도 잘 안 되어 업무 누락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불편한 것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다가 출석 프로그램을 만들어 웹사이트와 연동시키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고 혼자 개발하여 학부 근로 장학생들이 사용하며 근무일지 누락, 업무 누락 등 다양한 것을 개선시킬 수 있었다.
위 사진은 출석 프로그램 시나리오인데 아래와 같다.
- 만들어진 사이트에서 회원가입을 한다. 회원가입을 하면 학번이 담긴 QR코드를 부여받는다.
- 출근 시 부여받은 QR코드를 학부 사무실에 위치한 캠을 통해 출석한다.
- 출석 또는 퇴근 시 사이트 근무 달력에 출석이 찍히고, 카카오톡으로 연동된 학생들은 카카오톡으로 출석 또는 퇴근 메세지를 받을 수 있다.
- 퇴근 시 사이트에 인수인계를 남기고 다음 출근하는 학생들이 특이사항이 없었는지 체크한다.
백엔드를 더 좋아했지만 프론트엔드에도 관심이 많아 사이트를 예쁘게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확실히 디자이너가 필요한 이유를 알겠다.
과 1등을 하다
대학을 다니며 또 한가지의 목표가 있었는데 과 1등으로 장학금 받기였다. 물론 1등을 하면 기분 좋은 것도 있겠지만, 학비 면제 이유가 가장 큰 이유였다. 특별한 공부법은 없었던 것 같았고 수업할 때마다 앞쪽에 앉아서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모두 머릿속에 담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한 번 1등을 해보니 과 수석으로 졸업해보고 싶은 목표가 생겼고, 이후에도 1등을 몇 번 했었으나 아쉽게도 차석으로 졸업하게 되었다.
전공 튜터링
1학년 때 근로 장학생을 하며 선배분들에게 공부도 많이 배웠었는데 아는 내용을 누군가에게 가르쳐주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이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2학년까지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어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에 겁을 먹었었는데, 3학년 때는 이제 개발에 대한 것을 나도 후배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겠다 싶어서 학과에서 진행하는 전공 튜터링을 신청했었다. 그때 내가 가르쳤던 과목은 웹프로젝트실습
이라는 과목인데 JSP를 이용하여서 한 학기 동안 웹 사이트를 만들어서 발표하는 프로젝트 수업이었다. 약 10주 동안 주마다 2시간 이상씩 PPT를 만들어 수업하는 형식으로 JSP 기본부터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는 API 활용 방법이나, Ajax를 이용한 비동기 통신 등 다른 학생들과의 차별점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었다. 그 결과 5명의 튜티 모두 A+
성적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튜티들이 '내 인생의 멘토'라고 언급할 정도로 열심히 챙겨주었던 것 같다.
튜티가 작성했던 설문조사인데 뭔가 받고나서 굉장히 뿌듯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을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그 지식을 통해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보람찬 일인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배우고 싶은데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 또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코딩을 가르치는 봉사도 해보고 싶다.
전공 동아리 회장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모여서 공부할 수 있는 스터디나 동아리 같은 것을 찾고 있었다. 학교 내에서 전공동아리를 개설하여 지도 교수님과 학생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공과 관련된 스터디와 친목 활동을 하는 동아리가 있었는데 모집을 하자마자 지원했다.
초반에는 신입생이라 주로 선배분들이 가르쳐주시는 동아리 튜터링을 들었었고, 친목 활동도 많이 했었다. 그렇게 꾸준하게 전공동아리 활동을 했더니 선배분들이 내가 나이도 있고 열심히 하니 전공동아리 회장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셔서 어찌저찌 전공동아리 회장을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동아리 방, 튜터링, 회의, 친목활동, 회비 관리 등 임원들도 있었지만,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탓에 초반에 많이 헤맸던 것 같다. 그래도 이왕 하는거 제대로 하고싶어서 동아리의 모든 일에 대해 문서화를 하기 시작했다. 동아리의 규칙이며, 회의나, 튜터링에 대한 시간이나 공지사항 양식, 친목 활동에 대한 기록, 회비 관리 장부 등 필요한 것들은 문서화하고 불 필요한건 없애니 확실히 일이 더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체계가 잡히니 여유가 생겨 주도해서 수십 명을 데리고 MT를 가거나, 회식을 하고, 간식행사를 하는 등 내가 회장으로 있을 때 나름 동아리 인원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 누군가를 리드하는 것에 보람을 많이 느꼈었던 것 같다. 이때 주변에서 도와줬던 임원들도 많은 지시와 문서화에 힘들었을 법한데 믿고 열심히해줘서 너무 감사하다.
한국전자전 졸업 작품 전시
그렇게 3학년이 되었다. 컴퓨터소프트웨어공학과는 3년제라 3학년 때 학과에서 졸업작품을 하게 되는데 전공동아리에 속한 인원들은 전공동아리 인원들끼리 졸업작품을 만들게 된다. 내가 다녔던 학교가 좀 특별했던 것이 매년 코엑스에서 열리는 한국전자전에서 학교에서 만든 졸업작품을 전시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대신 전공동아리에 속해있고 해당 전공동아리가 졸업작품을 잘 만들어 심사에 통과해야지만 한국전자전에 졸업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긴 했었다.
내가 속해있던 팀이 만들었었던 스마트 냉장고 작품
나는 팀장을 맡아 직접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모든 제작 과정에 참여했었다. 사실 스마트 냉장고를 만들 때 걱정했던 것이 '이것을 우리가 구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스마트 냉장고는 안에 있는 카메라와 인공지능을 통해 식재료를 인식하고, 이것을 리스트 화하며 냉장고안에 있는 식재료들로 레시피를 추천해준다든지, 유통기한 알림을 준다든지 등 기술적으로 난이도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팀원들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많이 생겨, 내가 직접 시스템을 설계해보고 기술적으로 가능할 것 같은지, 그리고 한국전자전에 출품하려면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 심사기준을 넘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관련된 자료를 모아 팀원들에게 발표하고 팀원들을 설득하여 스마트 냉장고를 주제로 개발하기로 했다.
팀원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나는 태블릿에 보여지는 프론트엔드 영역 전부와 백엔드를 거의 다 담당했었다. 이때 인공지능을 맡았던 친구와 하드웨어를 담당했던 친구들이 정말 잘해줘서 출품 당시 다른 팀들보다 완성도가 높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인공지능에 관련된 기술을 사용하다보니 한국전자전 관람객분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게 식품 관련 회사에서 우리 팀을 잘봐주셔서 필요한거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하시며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주셨었다. 이렇게 한국전자전이라는 큰 전시에서 내가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관람객들에게 설명하면서 몇 달동안 힘들게 만들었던 작품에 보상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되게 보람찼다.
컴퓨터공학부 조교
3학년을 그렇게 마무리할 때쯤, 남은 1년이 아깝다고 느껴졌다. 학과가 3년제이다 보니 3학년에 졸업을 해야 했었는데 학교에서는 남은 1년을 위해 컴퓨터소프트웨어공학과 학사 제도가 있었다. 남은 1년을 컴퓨터소프트웨어공학과에서 야간으로 수업을 들으면 학사 학위를 주는 것이었는데, 야간 평일 주 3회 수업을 하다보니 주간에는 할 일이 없었다.
원래 마음 같아선 주간에는 취업을 위한 공부만 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기도 했고 근로 장학생으로 근무하며 학과 팀장님께서 나를 너무 좋게 봐주셔서 조교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봐주셨다. 복합적으로 생각했을 때 학교에서 주간에는 돈도 벌고 야간에는 바로 수업을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나에게는 최고의 자리이지 않았나 싶었다. 그렇게 나는 인공지능소프트웨어학과 학사 업무지원과 컴퓨터공학부 실습실 관리 담당으로 4학년 동안 컴퓨터공학부 조교를 하게 되었다.
원래 인공지능소프트웨어 학사지원만 담당하거나 실습실 관리만 담당했어야했는데 부서에서 인원 배정을 1명으로 받아 내가 두가지 업무를 다 담당하게 되었었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 생각했었는데 하다 보니 일이 정말 많았고, 이것을 체계적으로 해야겠다 싶어서 아래 사진과 같이 노션을 이용하여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려고 노력했었다.
노션으로 일간, 주간, 월간으로 해야하는 일을 분류하고, 매일마다 했던 일들을 일일 업무에 기록했다.
1년동안 이렇게 노션에 정리하면서 근무를 했었는데 되게 효율적이었고 모든 일을 빠르고 누락되지 않게 잘 처리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동안 9시부터 18시까지는 교직원으로 근무하고, 19시 30분부터 22시 30분까지는 수업을 들으며 바쁘게 보냈다.
학사를 졸업하면서, 조교도 그만두기로 결정했었는데, 팀장님과 학부장님, 여러 교수님들이 좋게 봐주셨는지 일년만 더하면 안 되냐고 부탁하셨었다. 개발자가 얼른 되고 싶었기에 정중히 거절하고 그만두기로 했다.
교수님들의 경우 대학 내 다른 부서에서 겸직을 하고 계신 경우가 많았는데 해당 부서에서 정직원을 채용하니 지원해보라고 하셨었다.
어느 두 교수님께서는 본인이 있는 부서에 와서 정직원으로 일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봐주셨었는데, 학교에서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이러한 제안도 주신 것 같아 정말 기분이 좋았다.
졸업
4년간의 긴 시간이 지나고 대학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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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헹가래는 의도된거다. 나와 함께 일하던 근로장학생들한테 헹가래 받아보고싶다 했는데 졸업식날 흔쾌히 헹가래를 해주었다.
아! 그리고 나는 일할 때 무조건 높은 사람, 오래 근무한 사람이 더 열심히 일해야한다는 철칙을 가지고 일을 해서 조교인 나부터 더 열심히 일을 해야한다 생각했고, 높은 학년인 친구들에게 더 많은 일을 시켰었다. 분명 학년이 먹을 수록 더 쉬고싶었을텐데 묵묵히 나의 지시를 따라 열심히 일해주었던 진우, 하민이에게 너무 감사하고 열심히 같이 일해준 나머지 근로장학생들에게도 너무 감사하다.
놀 때 열심히 놀고 공부할 땐 열심히 공부하고, 바쁘게 지내면서 힘들었던적도 많았지만 정말 즐거웠던 대학 생활이었다. 후회가 되는게 있다면 더 열심히 공부하지 못했던 것이다. 차석으로 졸업했으면서 도대체 뭐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냐고 재수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뒤에서 더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취업 준비
나는 2023년 2월에 졸업했는데, 연초인 1월부터 취업 준비를 했었다. 2022년도엔 주간에는 일을하고 야간에는 수업을 들으며 프로젝트까지 하다보니 별 다른 취업준비를 못했었는데 그래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기에 취업을 잘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다. 깃허브를 제대로 관리하기 시작했고, 이력서를 수정하며 회사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현실은 처참했다. 프로그래머스, 원티드, 잡플래닛, 잡코리아 등 약 70건 정도 지원했는데 서류는 약 5개 합격, 과제 또는 코딩테스트를 응시한 곳은 2곳, 테스트를 합격한 곳은 한 곳이었다. 드디어 면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도 서류합격률이 10% ~ 20% 사이는 될 줄 알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그래서 그만큼 기회가 주어진 면접이 너무 소중해서 면접을 열심히 준비했었다.
면접을 보자마자 어디라도 취업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나의 자신감이 무너지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이력서에는 이것저것 활동한 기록들과 회사를 다닌 이력 등 나를 뽐낼 수 있었던 것은 많았지만 기술적으로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면접이 끝나고 내가 왜 기술적인 것에 대답하지 못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는데, 프로젝트를 하며 기능 구현한 것을 다 할 줄 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자바스크립트와 노드를 이용해서 서버를 만들고 여러가지 기능을 구현할 줄은 알지만 자바스크립트와 노드의 동작 방식은 제대로 몰랐던 셈이다.
학교를 다니며 교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것만 받아들이고, 프로젝트를 할 때도 기능만 구현하면 잘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동작 방식이나 원리, 코드 한 줄 한 줄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항상 성적을 받기 위한 개발을 했을 뿐 개발에 대해 진심으로 공부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내가 했던 개발들이 진짜 개발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이 드니, 잠시동안 우울감에 빠져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러다가 오히려 이건 나에게 정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어 울적한 기분에서 빠져나와 앞으로 어떻게 공부를 할 것인지 고민해보았다.
아니, 부족하다는 건,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건데 너무 좋은거 아니냐고!!
프로그래머스 백엔드 데브코스
지원 과정
기본이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나는, 기본을 공부할 수 있고 온전히 긴 시간동안 개발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했다. 혼자 공부하는 것은 정말 비효율적이고 성장하는데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고민하던 중 부트캠프가 떠올랐고 기초를 다지며 나를 성장시킬 수 있을 것 같아 적합한 환경이라 생각했다. 여러 부트캠프를 찾던 와중에 친구 한 명이 프로그래머스에서 진행하는 백엔드 데브코스를 했던 기억이 나서 친구에게 연락하여 데브코스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우선 다른 부트캠프와 차별점으로는 팀당 멘토님과 서브멘토님이 한 분씩 계시고, 주 마다 미팅하며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코드리뷰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유튜브에 교육생들의 영상도 자주 올라왔었고 내용들도 좋았으며 타 부트캠프 대비 홍보를 덜 했던 것도 좋았다.
사실 이런거를 안 찾아보려고 해도, 부트캠프를 찾아보는 입장에서 이런 글이 있으면 참고를 안하기는 어려웠다. 요즘은 부트캠프도 꼭 수능 같다. 좋은 부트캠프를 가야 좋은 곳에 취업할 수 있는 것 처럼 말이다. 경쟁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후기를 계속 찾아보니 좋다는 이야기 밖에 없었고 정말 모든 교육생들이 만족하는 것 같아서 합격하고 싶은 마음에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공부한 것을 매일 정리만 하지 않고 나의 생각을 같이 기록했고, 코딩테스트 준비와 서류를 정말 신경써서 준비하려고 노력했다. 서류를 쓰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글에 거짓 없이 나의 진심을 담는거였다.
나의 진심이 전달된 것인지 서류, 코딩테스트, 면접 모두 합격하여 데브코스 교육을 들을 기회가 생겼다.
3월부터 6월까지 노션에다가 공부한 것을 기록하고, 그날 공부한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었었다. 데브코스 교육 담당 매니저님께서 정말 꼼꼼하게 보신다고 들었어서 지원서에 이 링크도 같이 넣어두었는데 이런 것들이 합격에 영향을 조금이라도 주지 않았을까 싶다!
교육 기간
6월이 되고 데브코스 과정을 시작했다. 자바와 스프링에 대해서 많이 모르고 들어와서 그런지 다른 친구들에 비해 확실히 내가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아무래도 그런 생각이 계속 들다보니까 잘할 수 있을까란 걱정도 들면서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았었는데 서브멘토님과 면담 후 자신감을 많이 얻어 그런 생각이 싹 없어졌다.
그리고 매번 생각하는 것이지만, 부족하다는 것은 배울게 많다는 것이고, 배울게 많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백엔드 쪽을 좋아하나보다. 공부를 해도해도 끝이 없는 분야이기도해서,,
나는 교육 기간동안 최대한 기본기에 초점을 맞춰 공부하려했다. 다른 교육생들이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거나 잘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따라가지 않으려 했다. 나의 페이스에 맞춰 이전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라는 생각으로 마인드 컨트롤하며 공부했는데 확실히 오랜기간동안 꾸준하게 공부할 수 있는 장치가 된 것 같다.
남들이 지금 잘한다고 부러워하지 말자, 나도 꾸준하게 공부하고 노력하면 그들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교육 기간동안 가장 좋았던 것 2가지를 뽑자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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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님과 서브멘토님의 코드리뷰와 질의 응답
데브코스는 과제가 정말 많다. 과제가 끝나면 그 다음 과제가 있고 이게 반복되는데 그 과제를 할 때마다 멘토님과 서브멘토님의 코드 리뷰를 해주신다. 사실 데브코스에 오기 전에는 코드를 작성할 때 동작만 하면 오케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멘토님과 서브멘토님의 코드리뷰를 통해 코드 한줄 한줄에 나의 생각을 담아서 짤 줄 알게되었다.
주로 이런식으로 코드 리뷰를 받았었다!
그리고 매주마다 멘토님, 서브멘토님과 미팅 날짜를 잡아 사담도하고, 질의응답을 가지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이제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기술적으로 궁금한 것들 등 다양하게 여쭤보기도하고 여러가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데브코스 끝나고도 질문이 생겨 여쭤보면 바쁘신 와중에도 답변을 너무 잘해주신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게 서브멘토님께서 팀원들에게 CI/CD를 가르쳐주기 위해 전 날 하루를 통으로 공부하신다음 다음 날 4시간동안 쉬지 않고 알려주셨었는데 교육생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너무너무 감동먹었었다.
하루 빨리 좋은 곳에 취업해서 멘토님과 서브멘토님께 자랑하고 맛있는거 대접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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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할 수 있는, 열심히 하는 동료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로 동료들이 정말 열심히 한다는 점이다. 열심히 할 뿐더러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같이 머리를 맞대고 몇시간 동안 토론하기도 하고, 자기가 정리한 내용들을 공유한다든지 공부하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 공유 문화에 적응되어, 나도 내가 트러블 슈팅한 내용들을 공유하여 다른 교육생들의 다양한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공부해서 지칠 때, 동료들끼리 서로 힘내자고 응원하고 격려하며 이겨낼 수 있었다. 확실히 개발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료들과의 지속적인 소통과 교류,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한 것 같다. 데브코스를 시작하고나서부터 스스로 성장하는 것보다, 동료 성장이 더 좋다고 느끼게 된 것 같다.
피어 리뷰
데브코스 기간동안 PRE팀과 NEW팀 두 번의 팀이 구성되는데 PRE팀은 데브코스 적응을 위한 팀이고, NEW팀은 데브코스 적응 후 최종 프로젝트까지 같이 하게되는 팀이다. 아래는 데브코스 기간동안 팀원들에게 받은 피어리뷰이다.
PRE팀(6명)
NEW팀(4명)
나 스스로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팀원들이 항상 좋은 리뷰를 해주며 용기를 주어 매번 잘 이겨냈던 것 같다. 무사히 수료할 수 있게 도와준 나의 모든 팀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배운 점
데브코스를 통해 가장 크게 배운 점은 코드와 기술에 나의 생각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에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사용했던 기술과 작성했던 코드를 이제는 근거 있는 코드와 기술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멘토님께서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었는데, 협업을 하며 사람이 중요하다고 굉장히 많이 느꼈다. 개발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각기 다른 직무를 가진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 하나의 서비스를 만드는 팀원들의 의견은 모두 소중한 것이고, 존중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문화를 만든다면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다 같이 머리를 맞대어 좋은 서비스로 개선할 수 있는 그런 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데브코스 이전의 나는 코더였다면, 지금은 스스로 생각하는 개발자가 되었다.
현재의 나
데브코스가 끝나고나서는 아쉬운 마음이 크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다시 되돌아보면 정말 죽을만큼 열심히했다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데브코스 기간동안은 국민취업지원제도와 부트캠프를 통해 받는 돈이 있었는데, 이제 또 들어오는 수입이 없으니 알바를 시작해야 했다. 취업 준비에 지장을 줄 것 같아 최대한 오전 일찍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헬스장 오픈 알바를 찾아서 평일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두시간동안 근무하고 바로 운동을 하고 집으로 간다. 그 이후에는 CS스터디와 알고리즘 스터디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쭉 공부하고 있다.
데브코스가 끝나고 공부했던 습관들을 잃어버릴까봐, 최대한 도움이 되는 것을 찾아서 적용하려고했다.
틱틱이라는 앱인데, 뽀모도로라해서 45분 공부하고 15분 쉼을 반복하여 집중도를 높이는 기능을 제공한다. 처음엔 별 생각 없었는데 실천해보니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습관을 적어놓고 체킹할 수 있는 기능도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사용해보는거 추천한다.
그리고, 데브코스에서 했던 프로젝트에 아쉬움도 많이 남아, 같이 했던 팀원들과 주에 1번씩 오프라인으로 만나 13시부터 22시까지 같이 리팩토링하며 의견을 나누는 시간도 갖고 있다. 그동안 프로젝트를 하며 리팩토링을 해본 경험이 없어서인지 리팩토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리팩토링을하며 의존 관계나 조금 더 나은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해야하는지 느낀 것 같아서 좋았다.
더 나은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리팩토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현재는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일 -> 공부 -> 일 -> 공부의 연속이다.
취업이 생각보다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꼭 취뽀해야지! 이 세상 모든 취업 준비생분들 화이팅!!
마지막으로
긴 내용을 작성하다보니 계속 끊어서 쓰게되었다. 그래서인지 글의 퀄리티가 굉장히 낮게 느껴지는데, 이 글을 적으며 내가 어떠한 가치관을 갖고 살고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다시 복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스스로도 너무 좋았다. 29살에 신입 개발자로 취업해서 20대때 개발자로써의 목표를 세우기엔 너무 시간이 많지 않아서, 30대의 개발자 목표를 정하자면 나는 커리어리나 링크드인 등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나름 유명한 개발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물론 허세 가득하고 겉으로만 잘해보이는 그런 개발자가 아닌, 나의 생각을 공유하여 그 생각을 통해 여러 개발자들의 어려운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개발자가 되고 싶다.
굉장히 좋지 못한 퀄리티의 글인데,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